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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을 위한 두 가지 치료 (TWO CURES FOR LONELINESS)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9월 12일 주일 아침,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102:6-7). |
시편 기자는 자신을 세가지 새와 비교했습니다, “광야의 올빼미,” “사막의 부엉이,” 그리고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시편 기자가 느꼈던 외로움을 세 가지 새로 설명한 것입니다 – 외로운 광야의 올빼미와, 외로운 사막의 부엉이와, 지붕 위의 혼자 있던 참새. 스펄젼이 언급했습니다,
보통 우울이나 가엾음을 상징할때 사용되는 새들로…시편 기자는 자신을 [비교했습니다]…그는 폐허가 된 성전에 앉아 있는 [슬프고 외로운] 새 처럼 자신을 보았습니다 (C. H. Spurgeon, The Treasury of David, Pilgrim Publications, 1983 reprint, volume IV, p. 420).
Dr. Gill이 언급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살고 있던 집들의 지붕은 평평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고독의 새들은 혼자 앉아서 저녁시간을 보냅니다, 바로 시편 기자가 자신을 [비교한] 것입니다; 자신의 친구들이나 알고 지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거나; 아니면, 환경 때문에 [슬펐거나 외로워서], 혼자 있고 싶은 결정을 한 것입니다, 자신의 슬픈 상태와 상황 때문에 애도 하면서 (John Gill, D.D., An Exposition of the Old Testament,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89 reprint, volume IV, p. 127).
오늘 날의 대부분의 고등학생과 대학생 젊은이들은 시편 기자와 같은 심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여론조사들의 결과를 보면 외로움은 오늘 날의 젊은이들 사이에 큰 문제입니다. 어느 젊은 청년이 Josh McDowell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어느 사람에게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관심을 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저는 너무 외로워서 혼자 서 있는게 너무 힘듭니다” (quoted by Josh McDowell in The Disconnected Generation, Word, 2000, p. 11). 이 젊은 청년은 시편 기자가 언급했던 외로움의 고통을 경험한 것입니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102:6-7).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외롭게 있으시기를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셨기를,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나니” (창세기 2:18). 에덴동산 전부터 사실이었으면 오늘 날에도 사실인 것을 저는 믿습니다 –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나니” – 여자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여러분이 외롭게 지내는 것을 하나님도 원하시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외로움을 위한 두 가지치료 방법을 제공해 주셨습니다.
I. 첫번째, 여러분의 감정적인 외로움을 치료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지역교회를 제공해 주셨다.
오늘 날 젊은이들은 너무 많은 유리한 점들이 있습니다 – 텔레비젼, 자동차, 돈, 컴퓨터 – 그리고 이전의 세대들이 누리지 못했던 수많은 유리한 점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들은 외로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의 부모님들은 떠났거나,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너무 바빠서 자신들의 자녀들과 시간을 보내지 못합니다. 대부분 이들의 어머님들도 일을 합니다. 혹시 형제나 자매가 있으면, 대부분의 시간은 같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컴퓨터를 켜서 온라인 상 사람들하고 “채팅”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은 진정한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이들은 가상적인 사람들 입니다, 실제 가 아닌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족하는 친구들을 컴퓨터로 만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수백시간을 지낸 후 – 혼자 – 여러분은 무엇인가 더 필요하다는 느낌을 얻으실 것입니다, 실질적인 무엇! 여러분은 가끔식 이러한 질문을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인생에서 전부인가?”
또한 지속적으로 옮겨다니는 문제도 있습니다. 저의 부모님들은 몇년마다 계속 옮겨 다녔습니다 – 늘 돈을 더 벌기 위해서, 아니면 다른 “유익을” 얻기 위해서. 저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계속 옮겨다니는 일이 자녀들에게 무슨 영향을 끼치는 지 생각을 전혀 해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녀들은 언제나 학교 반에서 “새로운 학생” 입니다, 언제나 “외부인” 입니다. 저는 이것이 어떠한 영향을 주는 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는 12학년을 졸업하기 전 20군데가 넘는 다른 학교를 다녔었습니다. 저는 늘 “새로운 학생” 이었습니다 – 언제나 “외부인” 이었습니다 – 언제나 혼자 이었습니다. 당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많이 옮겨다녀서! 여러분은 이렇게 느껴 보셨습니까? 저의 친구 Dr. John S. Waldrip도 느껴 보았습니다. 그 또한 어려서부터 학교를 계속 옮겨 다녔습니다.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102:6-7).
그도 이러한 방식으로 느꼈습니다. 여러분도 이러한 방식으로 느껴 보았습니까? Dr. Waldrip이 젊었을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젊은 남자와 여자가 꽉 차 있는 나이트 클럽에 있었습니다. 거기서 저는 서 있었습니다, 사람으로 가득한 장소에서, 완전히 모든 이들로부터 동 떨어져 있고 외롭게…
여러분은 이렇게 느껴 본 적이 있으십니까 – 사람이 가득한 장소에서 외롭게? 그 이후 Dr. Waldrip이 언급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일정을 벽과 벽 사이의 이벤트로 채웁니다…하지만 모든 활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과 깊이 친해지지 않습니다. 우리는 친구와 관계하는 것보다 만남의 사회로서 형성된 것입니다 (John S. Waldrip, Th.D., “Cure for the Lonely Heart,” May 2, 2004).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102:6-7).
그러나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나니” (창세기 2:18).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역 교회를 형성한 이유 중 하나가 이것입니다 – 여러분의 외로운 감정을 치유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이 혼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이 이유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18).
여러분이 고등학교나 대학교를 졸업할 때,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계속 연락하자,” 아니면 “우리 꼭 만나자.” 하지만 대부분 말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다른 방향의 길로 가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지역교회로부터 “졸업”을 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죽게되도, 천국에서 같은 성도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이 이유 때문에 조금 전 Mr. Grifith 부르셨던 찬송을 제가 작사 했습니다,
대도시 사람들은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들이 권하는 것은 작고 나눠줄 사랑도 없다.
그러나 집에 와서 예수를 만나면 볼것이다,
식탁의 음식과 친분을 교류하는 곳!
집, 바로 교회로 와서 식사하자, 감미로운 교제를 위해 모이자;
아주 훌륭한 대접일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앉아서 먹을 때!
(“Come Home to Dinner” by Dr. R. L. Hymers, Jr.;
to the tune of “On the Wings of a Dove.”)
다시 후렴 부분을 부릅시다!
집, 바로 교회로 와서 식사하자, 감미로운 교제를 위해 모이자;
아주 훌륭한 대접일 것이다, 우리가 다같이 앉아서 먹을 때!
II. 두번째, 여러분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영성을 치유하기 위해서 하나님은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다.
우리의 첫 부모님들이 동산에서 죄를 지었을 때, 소외 되었습니다, 분리 되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아담은 하나님으로부터 “숨었습니다” (창세기 3:10). 그들은 동산에서부터 “내보내어” (창세기 3:23) – 그리고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부터 끊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로마서 5:12).
죄로 말미암아, 온 인류는 “허물로 죽었습니다” (에베소서 2:5). The Scofield Study Bible의 의한 에베소서 2:5절의 기록은, “영적 죽음은 자연인의 상태 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으로부터 소외된 상태…” 에베소서 4:18절이 말씀하는 것은 인간의 자연적인 상태가,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에베소서 4:18).
갈라졌습니다, 제외됬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됬습니다 – 인류는 어두움 안에서 헤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긍휼로, 독생자를 보내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늘에서부터 내려 보내셔서 하나님과 죄스러운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려고. 성경이 언급하기를,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10).
우리는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적군이었습니다 (로마서 8: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이기 위해서 보내셨습니다 – 우리의 모든 죄 값을 치루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예수님을 죽음에서부터 부활케 하셨습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천국에 계십니다, 하나님 보좌 우편에. 여러분이 예수님께 나오실 때 여러분의 죄는 속죄되었고, 그리고 여러분의 “모든 죄”는 주님의 보혈로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요한일서 1:7). 성경에서 기록되기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로새서 1:21-22).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실 때, 바로 하나님의 아들에게, 여러분의 죄는 여러분 대신 죽으셨던 주님이 갚게 됩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삼아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보혈은 여러분의 죄를 씻어 버립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여러분을 새롭게 거듭나게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새롭게 거듭날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이 세상에서 혼자 지내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광야의 올빼미나, 사막의 부엉이나,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지” 않을 것입니다 (시편 102:6-7) – 왜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다같이 일어나셔서 찬송책 삼 번을 부르겠습니다.
나의 구속으로부터, 슬픔과, 밤으로부터 나아가, 예수님, 내가 옵니다, 예수님, 내가 옵니다;
주님의 자유함 안으로, 감사함으로, 빛으로, 예수님, 내가 주님께 옵니다;
나의 아픔으로부터 주님의 건강으로, 나의 원함으로부터 주님의 풍성함으로,
나의 죄로부터 주님안으로, 예수님, 내가 주님께 옵니다.
(“Jesus, I Come” by William T. Sleeper, 1819-1904).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You may email Dr. Hymers at rlhymersjr@sbcglobal.net, (Click Here) –
or you may write to him at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Or phone him at (818)352-0452.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시편 102:1-7.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Come Home to Dinner” (by Dr. R. L. Hymers, Jr.).
설교 요약 외로움을 위한 두 가지 치료 (TWO CURES FOR LONELINESS) by Dr. R. L. Hymers, Jr. “나는 광야의 올빼미 같고 황폐한 곳의 부엉이 같이 되었사오며 내가 밤을 새우니 지붕 위의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시편 102:6-7). (창세기 2:18) I. 첫번째, 여러분의 감정적인 외로움을 치료하기 위해서 II. 두번째, 여러분의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되는 영성을 치유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