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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부활의 대한 세 가지 증명 (THREE PROOFS OF CHRIST’S RESURRECTION)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4월 18일 주일 아침,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
사도행전 26장에서 누가는 바울의 회심 간증을 세번째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가 세번씩이나 기록한 것은 쉽게 이해하라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제외하고는, 기독교 역사 상 사도 바울이 회심한 사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바울이 체포된 이유는 이 말씀을 전해서 입니다,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은 살았다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사도행전 25:19).
그리고 바울은 서 있었습니다, 쇠사슬로 손이 묶인 체, 아그립바 왕 앞에서. 아그립바는 유대인 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은 구약성경에서 예언 된 그리스도 부활의 관해서 말씀을 전한 일 대해서 변호 했습니다. 또한 아그립바 왕이 이미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신 것과 부활 대해서 알고 있었다고 자기 자신을 변호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일과 부활의 사건은 그 당시 삼십년 전에 일어났었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아그립바 왕도 포함해서. 그래서 바울이 말하기를,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이 말은 그 당시 아주 보편적인 헬라 표현어 이었습니다. Dr. Gaebelein의 주석에서 기록되기를,
예수님의 사역은 발레스타인 지역에서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그립바도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충분히 증명되었고, 기독교의 복음은 삼십년 동안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분명히 왕은 이 사건들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Frank E. Gaebelein, D.D., General Editor,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81, volume 9, p. 554; note on Acts 26:25-27).
그리스도 부활의 사건이 무식한 몇 어부들만 알고 있었다고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도 진리를 바꿀수가 없었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관해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들이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의 삼십년 동안 로마 세계 곳곳에서 선포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사건은 비밀로 남지 않았습니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Dr. Lenski 가 언급하기를,
예수님의 관한 모든 이야기들은 제국에서 제일 중심지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공회와 [로마 총독] 빌라도가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국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둘러싼 지역들도 명성으로 알려 진 것입니다.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라”…아주 작은 사건으로서 아무도 몰랐던 것이 아니라, 아주 크고 치명적인 사건으로서, 공개적이고 광범해서, 아그립바 [왕]도 최대한 관심을 쏟아야 했습니다 (R. C. H. Lenski, D.D., The Interpretation of the Acts of the Apostles, Augsburg Publishing House, 1961 edition, p. 1053; note on Acts 26:26).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주님께서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신 사건의 관해서 그리스도의 적군들은 삼십년 동안 증명할 수 있는 기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실패 했습니다. 그들이 어떠한 노력을 했을찌라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후에 죽어 계셨다는 것을 적군들은 증명하는 것을 실패 했습니다. 바울이 아그립바 왕에게 예기할 때에, 수천명의 유대인들과, 수만명의 이방인들은, 미리 선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셨네.”
기독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부활 입니다. 만약에 예수님의 육체가 무덤에서부터 부활하지 않았다면은, 기독교 믿음의 토대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 스스로가 말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쓸모 없이]” (고린도전서 15:14).
그리스도의 적군들은 부활의 사건이 틀렸다고 입증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던 것이 놀랄 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다 실패 했습니다. 저는 Greg Laurie의 많은 주제들을 다 동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부활 관해서는 그와 동의합니다. 그리스도의 적군들이 왜 실패 했는지 Greg Laurie는 세 가지 이유를 언급했습니다 –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한 세 가지 증거 (Greg Laurie, Why the Resurrection? Tyndale House Publishers, 2004, pp. 13-24). 저는 이 요소들을 다른 말로 바꾸어 표현하겠습니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I. 첫째로, 비어 있던 무덤.
예수님 부활의 대한 첫 증거는 바로 비어 있던 무덤 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삼일 후에 무덤이 비어 있던 사실이 주님의 부활의 관해 위대한 증거 입니다. 사 복음서의 모든 저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으시고 삼일 후에 무덤이 비어 있던 것을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증인들도 무덤이 비어 있던 사실을 확인 했습니다.
그리스도 부활의 관한 제일 오래된 비난은 바로 누군가 예수님의 시체를 흠쳤다고 합니다. 대제사장들은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가로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적질 하여 갔다 하라…군병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태복음 28:12-15).
그러나 이 합의는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했습니다. 기본 상식으로 보면은 제자들이 예수님 시체를 흠치지 않았으며 부활의 사실도 가장으로 여기지 않았을 겁니다. 그리스도께서 체포를 당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히기 삼일 전 제자들은 자신들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도망 갔었습니다. 이렇게 겁이 많던 제자들이 용기있게 무덤까지 가서 예수님 시체를 흠쳤을 거라고는 거의 믿기 힘든 일입니다 – 그리고 나서 주님이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셨다고 확신있게 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 자신들의 목숨까지 위협 당하면서! 아닙니다, 이것은 극단적인 논의 입니다! 사건들이 단순하게 이어지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방 안에서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이 두려워하여” (요한복음 20:19). 제자들은 겁에 질려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주님이 다시 부활할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 중 강력한 로마 정부와 맞서거나 예수님 시체를 빼앗고자 하는 믿음과 용기의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근거는 사실 이상으로 바라볼 수 없는 심리학적인 사실 입니다.
그리스도 시체를 흠칠 수 있던, 다른 유일한 용의자들은, 주님의 적군들이 었습니다. 이 이론의 문제점은 주님의 적군들이 무덤을 흠칠 이유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다른 종교 리더들이 그리스도를 죽게 한 이유는 주님이 자신들의 종교성과 삶의 방식에 위기를 느끼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가 다시 살아났다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체를 종교 리더들은 제일 원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 리더들은 주님의 부활의 관한 모든 것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장거리도 다니기 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기록되기를 그들은, 본디오 빌라도, 로마 총독에게 갔다고 나와 있습니다,
“주여 저 유혹하던 자사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 하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27:63-64).
빌리도는 군사들에게 무덤을 “굳게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 무덤을 최선으로 지키라는 명령 (마태복음 27:65). 그래서 군사들은 무덤을 인봉했고 파숫군을 세워서 무덤을 지켰습니다 (마태복음 27:66). 이상하게도, 예수님의 제자들보다 대자사장들과 종교 리더들이 그리스도 부활의 대해서 더욱더 확신을 갔고 있는 것 처럼 보입니다!
사실은 종교 리더들이 그리스도의 시체가 도난 당하지 않게 너무 극단적으로 일을 진행 시킨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가 약속하신 죽음에서부터 부활이 거짓이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부활했다는 소문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종교 리더들은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 예수님의 시체를 흠치는 짓은 적군들이 마지막으로 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에 그들이 시체를 흠쳤더라면,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 대해서 말씀을 전할 때 시체를 보여 주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적군들은 한번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왜냐고요? 단순하게 그들은 만들어 낼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서부터 부활 하신 것입니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비어 있던 무덤은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부활 한 첫 증거 이지만, 더 있습니다!
II. 둘째로, 목격자들의 이야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제자들은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주님을 다시 볼 수 있다는 소망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요한복음 20:19).
제자들은 살아있는 주님을 보고 또 보았습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3).
사도 바울이 언급하기를 승천하신 그리스도가,
“게바 [베드로] 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 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그 후에 아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5-8).
Dr. John R. Rice 가 언급하기를,
수백명의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관찰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넘치는 은혜입니까, 그리고 그들 중 몇 사람은 사십일 기간 동안 예수님을 보고 또 볼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3]. 성경의 규정은 “두 세 증인의 입으로서”라고 나옵니다. 거기서는 수백명의 증인들이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위해 한 명이나 두 명의 목격자로부터 죽기까지 비난 받았습니다.
중요한 사건의 대해 결판을 내리기 위해서는 심사위원이 열두 달 동안 동의하면 됩니다. 여기서는 수백명의 목격자들이 동의하기를 예수님이 부활 했다는 것입니다. 사흘 후 주님의 시체를 보았다고 예기한 사람은 전혀 없었습니다, 또한 증거들을 반대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증인들의 증언은 – 목격자들, 구원자를 맡았던 증인들, 주님에게 손을 대고, 손과 발의 못자국을 느끼며, 주님이 식사하는 모습을 관찰했고, 사십 일 동안 주님과 함께 지냈던 이들 – 이 증언들은 미국 대법원이나 세계 어느 법원에서 진행되었던 소송 중 제일 뚜렸했던 증거 였습니다… 이 증거가 너무 뚜렸해서 믿기가 싫거나 증거를 검사하지 않아서 거부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라고 성경이 선언 한 것이 놀랄일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3 (John R. Rice, D.D.,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Sword of the Lord Publishers, 1953, pp. 49-50).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비어있던 무덤과, 수백명의 목격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부활했다는 강력한 증거 입니다. 그러나 더 있습니다.
III. 셋째로, 사도들의 순교.
만약에 부활이 거짓이었다면 왜 사도들이 수 많은 고통을 겪으면서까지도 전해야 했습니까? 사도들은 그리스도 부활의 대해서 계속 전한것만 아니라, 부인 하는것 보다 죽음을 선택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사를 읽게 되면 각 사도마다 [요한만 예외 – 고문을 당하고 추방 당했음] 끔찍하게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사도들이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부활했다고 전했기 때문입니다. Dr. D. James Kennedy가 말하기를,
이것은 지극히 중요한 사실 입니다. 심리학의 역사상 거짓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생명을 포기했던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사도들과 초대교회 성도들이 고난과, 엄청난, 믿어지지 않는 고통을 허락하셨는지 저는 늘 고민 했었습니다…우리는 믿음이 있습니다, 성품과, 고난과, 증인들의 죽음도, 자신들의 피로서 증언을 확증시킨자들…Paul Little이 말하기를, “사람은 진리라고 믿는것을 위해 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위해, 죽지는 않습니다” (D. James Kennedy, Ph.D., Why I Believe, Thomas Nelson Publishers, 2005 edition, p. 47).
이 사람들이 죽은 까닦은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부터 부활하셨다고 목격했다는 말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 심한 채찍질을 당하고 거꾸로 십자가에 죽었다.
안드레 – X-모양의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 – 참수 당했다.
요한 – 끓고 있는 기름 통 안에 던져졌고
파트모스 섬으로 추방 되었다.
빌릴 – 채찍질을 당하고 십자가에 못 박혔다.
바돌로메 – [피부]를 벗기고 십자가에서 죽었다.
마태 – 참수 당했다.
야고보, 예수님의 형제 – 성전 꼭대기에서 던져
지고, 죽을때까지 맞았다.
다대오 – 죽기짜기 화살을 맞았다.
마가 – 죽기까지 끌려 당했다.
바울 – 참수 당했다.
누가– 감람나무에 매달려 죽었다.
도마 – 창 사이로 걷고, 불가마 안으로
던져졌다.
(The New Foxe’s Book of Martyrs, Bridge-Logos Publishers,
1997, pp. 5-10; Greg Laurie, Why the Resurrection? Tyndale
House Publishers, 2004, pp. 19-20).
이 사람들은 끔직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흉하게 죽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가 죽음에서부터 부활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보지도 못한 것을 위해 죽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무덤에서부터 승천하신 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고문과 죽음도 이 말씀을 전하는데 있어서 막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음에서부터 부활 하셨네!”
베드로는 물가에 그분을 바라보았네,
바다에서 그분과 같이 먹었네;
예수님이 말씀하기를, 한번 죽었던 입술로,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는냐?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강하고 차가운 죽음의 쇠고리는 부셔졌네 –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Alive Again” by Paul Rader, 1878-1938).
이 사람들은 불신의 비겁한자부터 용감한 순교자로 변화 되었습니다 – 왜냐하면 무덤에서부터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도마는 그분을 방에서 바라보았네,
그분을 가리켜 나의 주님 하나님이시여,
못과 검으로 만들어진 구멍 속으로
손각락를 넣었네.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강하고 차가운 죽음의 쇠고리는 부셔졌네 –
죽었던 그분이 다시 살아나셨네!
(Paul Rader, ibid.).
교회들이 Paul Rader의 은혜스러은 이 찬양을 배워더 다시 불렀으면 얼마나 좋을 지 저의 소원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저한테 편지를 써서 부탁하시면은 제가 찬양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리로 보내 주세요, to Dr. R. L. Hymers, Jr., P.O. Box 15308, Los Angeles, CA 90015 – 그리고 Paul Rader의 찬양 “Alive Again”을 요청하세요.
우리는 그리스도 부활의 관해서 더 많은 증거를 드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을 설득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느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무덤에서부터 승천하신 후에도 주님을 목격했지만 그래도 “의심”했었습니다 (마태복음 28:17). 여러분은 믿음으로서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합니다. 초 성육신 한 (preincarnate) 그리스도가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예레미아 29:13).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로마서 10:10).
저는 승천하신 그리스도를 아침 10:30에 만났었습니다, 9월 28일, 1961년 바이올라 학교의 강단에서 (지금은 대학교 입니다), Dr. Charles J. Woodbridge의 설교를 들은 후, 1957년 풀러 신학교에서 막 시작된 자유주의 때문에 학교를 떠나셨던 분입니다 (see Harold Lindsell, Ph.D., The Battle for the Bible, Zondervan Publishing House, 1978 edition, p. 111). 그리고 여러분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 – 만약에 여러분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 (누가복음 13:24) 시면서 주님을 알고 싶다면 말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께 나아가게 되면 여러분의 죄는 속죄되고 주님의 보혈로 씻어집니다 – 그리고 주님의 부활로서 여러분도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여러분이 머지않아 그리스도께 나아가시기를 제가 기도합니다! 아멘.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요한복음 20:24-31.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Alive Again” (by Paul Rader, 1878-1938).
설교요약 그리스도 부활의 대한 세 가지 증명 (THREE PROOFS OF CHRIST’S RESURRECTION) by Dr. R. L. Hymers, Jr. “왕께서는 이 일을 아시기로 내가 왕께 담대히 말하노니 이 일에 하나라도 아시지 못함이 없는줄 믿나이다 이 일은 한편 구석에서 행한 것이 아니로소이다” (사도행전 26:26). (사도행전 25:19; 고린도전서 15:14) I. 첫째로, 비어 있던 무덤, 마태복음 28:12-15; II. 둘째로, 목격자들의 이야기, 요한복음 20:19; III. 셋째로, 사도들의 순교, 마태복음 2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