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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바 (BARABBAS) by Dr. R. L. Hymers, Jr. 이 설교는 2010년 2월 21일 주일 저녁,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
성경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유월절 때 죄수를 풀어주는 관습이 있다고 합니다. 이 관습은 유대인들을 만족시키기 위한 빌라도의 행위였습니다.이 관습의 대한 기록은 사 복음서에만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주 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7:15절에서 “명절을 당하면 총독이 무리의 소원대로 죄수 하나를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 바로 이것은, 빌라도의 관습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8절에서는 죄수를 풀어주는 것이 빌라도로부터 “전례대로 하여주기를 구한대” – 바로 이것은, 빌라도가 늘 항상 해왔던 일입니다. 요한복음 18:39절에서 빌라도가 말하기를, “유월절이면 내가 너희에게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여기서는 모순되는 말이 없습니다, 어느 성경 비평자들이 추측하는 것처럼. “어렵다고” 불리우는 이러한 일들은 대부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죄수를 풀어주는 일은 빌라도의 전례였습니다. 유월절 때 빌라도가 죄수를 풀어주었던 것은 유대인들 사이에서 관습이었습니다. 이 세 말씀 구절이 우리에게 언급하는 것은 빌라도가 죄수를 풀어준 것입니다. 대부분의 다른 로마 총독들은 동일한 일을 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동일한 기록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도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복음서에서 기록한 일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복음서의 초기 독자들은 빌라도가 이 전례를 행했는지 안 행했는지 알수가 있었습니다. 이들은 증인이로서 직접 목격을 했었거나, 아니면 목격자로부터 들었을 겁니다. 그래서, 바라바를 풀어준 일이 모순이라는 가능성은 없습니다.
저는 성경적 “비판”을 “가장 새로 되는 것을 말하고 듣는 이외에 달리는 시간을 쓰지”(사도행전 17:21) 않는 사람들에게 맡겨 둘 것입니다. 저의 목적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신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후서 3:15) 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 사건들의 실상은 아주 단순합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중 끌려 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산헤드린 (유대인 재판소) 과 대제사장을 만나기 전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때리고, 얼굴에다 침까지 뱉었습니다 (마태복음 26:67). 그들은 예수님을 사형할 합법적인 권위가 없었기 때문에,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마태복음 27:3) 데려 갔습니다. 빌라도는 예루살렘에서 일어나는 중대한 일들을 보도하는 많은 정보원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면접하기 전, 로마의 폭동을 일으킨 원인이 예수님이 아니었던 것을 빌라도는 알고 있었습니다, 다른 법을 지키지 않았던 항목에도 무죄였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빌라도가 반복적으로 예수님을 가리켜 “이 사람” (마태복음 27:24) 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누가복음 23:14), 그리고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노라” (요한복음 18:38).
저는 오랫동안 빌라도가 안 좋은 사람으로 인상을 갖고 있었습니다. 몇일 전 예수님이 예루살렘 도시에 들어왔을 때 큰 무리가 뒤에 따라오면서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요”라고 예수님께 외친것을 빌라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쫓던 큰 무리가 폭동을 일으킬까바 두려워 했습니다. 더 나아가, 총독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시기로” 예수님을 자신에게 데려온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가복음 15:10). 빌라도가 생각하기를, 만약에 바라바와 예수 중 누구를 풀어주겠다고 제안 했을 때, 예수를 선택했을 거라고 확신했던 것입니다. 바라바는 살인과 민란을 꾸민 유죄 판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5:7; 누가복음 23:25). 바라바는 또한 도둑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8:40). 빌라도의 계산은 그들이 이러한 도둑이자 살인자인 “유명한 죄수” 대신 예수님을 풀어달라고 요청하기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마태복음 27:16). 그러나 안 그랬습니다! 빌라도가 이렇게 말했을 때, “예수를 내가 어떻게 하랴” “저희가 다 가로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마태복음 27:22).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이 요점으로부터 우리는 두 중대한 교훈을 배울수 있습니다.
I. 첫번째, 바라바 대신 예수를 선택한 그들의 행위가 보여주었던 것은 그들이 회심하지 않은 마음의 무지 였다.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이 사람들은 예수님 대신 바라바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바라바를 선택한 행위가 그들의 마음의 죄와 무지를 보여주었습니다. 베드로의 두번째 설교에서는, 오순절 후, 이렇게 언급됬습니다,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사도행전 3:14).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회심하진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부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거부합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 라”
(요한복음 15:19).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고 바라바를 선택한 것에 있어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교훈입니까! 방황하는 사람들의 “세계”는 Che Guevara를 선택합니다 – 무신론자이며 살인범 입니다 – 예수님 대신. 수많은 젊은 청년들은 이 살인범의 얼굴이 실려있는 티셔스를 입습니다! California State University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 들은 자격이 없는 남자를 위해 휴일을 보냅니다, 중대한 일이라고 전혀 하지 않은 사람을 위해, Cesar Chavez이란 사람을 위해, 그러나 아브라함 링컨을 위한 휴일은 없습니다, 우리의 순교자같은 대통령이며, 노예를 해방하고 연방을 구원하신 분! 그들은 달라이라마 같은 우상숭배자한테 엎드리고 간구합니다, 그러나 Sarah Palin같은 훌륭한 여성을 조롱하고 무시합니다! 그들은 찰스 다윈의 장점을 그렇게 극찬하면서, 오늘 날 까지도 그들의 입을 열려서, William Jennings Bryan을 저주하고 비방합니다! 그들은 헐리우드 배우들이 하이티 사람들을 도와주는 일 대해서 격찬하지만, 거기서 고아들을 도우려고 했던 많은 침례교인들을 감옥에 넣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평생 잊지 마세요,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 라”
(요한복음 15: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이것이 여러분들이 아직까지 회심하지 못한 이유가 아니었습니까? 사도가 이 말을 언급했을 때 옳지 않았습니까,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Dr. John R. Rice가 말하기를,
우리가 만약 그리스도처럼 같고 “세상으로부터”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라면 세상이 우리를 좋아하지 않을 것입니다 (John R. Rice, D.D., The Son of God: A Commentary 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Sword of the Lord Publishers, 1976 edition, p. 308).
여러분에게 사실이 아닙니까, “세상” 사람들이 여러분을 “좋아”하기를 원하는 것을? 바로 이것이 여러분을 붙잡는 죄가 아닙니까 – 예수님보다 바라바를 갈망하는 여러분의 마음 – 여러분을 사단으로부터 붙잡혀 있게 되는 것을?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서 4:4),
그러므로, Dr. Gill 이 언급한 것처럼,
…세상의 사람으로부터 오는 즐거운 동행과 이야기들, 순응을 향해, 따라서 함께, 죄악된 방식과 세상의 관습들은, 하나님과 전쟁을 선포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한 적대감의 [반대] 행위들; 그리고 하나님을 반항하는 증오의 생각들, 그리고 반드시 하나님을 심히 불쾌하게 하는 것들 (John Gill, D.D., An Exposition of the New Testament, The Baptist Standard Bearer, 1989 reprint, volume III, p. 515; note on James 4:4).
여러분이 예수님께 나아가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 바로 “바라바”와 우정을 쌓은 것이 아닙니까? 바라바를 던져 버리세요! 바라바를 버리세요, 그리고 그와 비슷한 모든 것을 다 예수님을 위해서 버리세요! 이러한 것들로부터 그 중에서 나오셔서 구세주께 다가 가세요! 더 늦기 전에 세상을 버리시고 여러분 자신들을 그리스도께 향하세요! 그리스도께 나아가세요 – 교회 안으로 그 길을 온전히 향하세요! “바라바”를 버리시고 그들의 친구를 여러분 뒤로 다 버리세요.
II. 두번째, 바라바 대신 예수의 대리 행위가 보여준 것은 죄인들을 대신한 구세주의 대속죄이다.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대리”라는 단어의 의미는 “다른 사람을 대신하는 것; 다른 사람 대신 한 사람이 무엇을 인내했거나 고통을 당하는 것” (Webster’s Dictionary, Collins World, 1978).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바로 이것을 행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을 위해서, 벌을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이사야 53:5).
시대 시대마다 예수님이 십자가의 못 박히신 일 대해서 사람들이 논쟁을 펼치는 것을 우리는 듣습니다. 예수님을 증오하여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빌라도에게 청했던 유대인들 때문이었습니까? 아니면 실제로 예수님을 사형한 로마인들 때문이었습니까? 어느 사람들이 말하기를 반유대주의의 씨앗이 사복음서 안에 있다고 주장합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반유대주의가 죄라고 저는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 배워 왔습니다. 그래서, 제가 복음서를 읽을 때마다, 두 부류의 유대인들이 존재했던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 에수님을 사랑했던 부류와, 예수님을 증오했던 부류. 후에 다른 부류가 (엣세네 파) 있었던 것을 제가 발견했는데 중립적인 그룹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예수님과 접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는 다른 부류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유대인들을 증오하라고 배워왔던 사람들입니다, 바로 복음서가 반유대주의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들은 자신들이 이미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복음서 안에서 읽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복음서는, 그리고 신약성경 전체에서 가르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유대인이나 로마인들 때문이 아니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사야가 언급했을 때,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이사야 53:5)의 말은 “우리”의 단어가 온 인류를 향한 것이라고 우리는 믿습니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요한일서 2:2).
예수님께서는 의도적으로 십자가에 매달리셔서 온 인류의 죄를 대속 하셨다고 신약성경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얼만큼 이 내용을 변경할찌라도, 그리고 유대인이나 로마인들을 탓할찌라도, 신약성경을 편견이 없는 정신으로 읽을때 이들의 주장은 확고하지 못합니다. 맏습니다, 유대인이나 로마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달리게 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 값을 치루기 위해 대속 하신 것입니다 – 죄의 값을 죄인들 대신 치루신 구세주 이십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한복음 3:16).
실제적으로 바라바의 사건을 대속죄를 증명하는 실증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죄인들을 대신 한 예수님의 고난. 그의 로마서 주석에서, Dr. Donald Grey Barnhouse는 바라바가 감옥에 있으면서, 십자가 사형을 기다리고 있었다고 주장했습니다. 갑자기 바라바는 분노의 외침을 들었습니다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라! 그를 십자가에 못 박혀라!” 간수가 다가와 그의 감옥 문을 열어줍니다. 바라바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힐 시간이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간수는 그가 풀려 나간다고 예기해 줍니다. 바라바는 반드시 이렇게 생각했었을 겁니다, “나 대신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매달리시네!”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사실 상, 중간에 있던 십자가는 바라바를 위해 준배해 두었다고 우리는 근거하여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양쪽 십자가에서 못 박혔던, 그 두 도둑은, 바라바와 한 패거리 였다고, 그리고 바라바가 그들의 두목이었다고, 많은 신학자들은 믿고 있습니다. 이 세명이 다 그 아침에 십자가에 사형을 당할 계획에 있었습니다 – 그러나 예수님께서 바라바를 대신해 가운데 있던 십자가에 매달리게 된 것입니다. Chuck Missler은 다음과 같이 설교요약을 기록했습니다:
바라바에 의한 복음서
Chuck Missler
그 운명적인 날 빌라도 앞에서 바라바 대신 예수님이 대리하신 것은 우리 각 사람에게 깊은 영향을 준다. (히브리어 의미로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 이다). 이 두 피의자의 대조를 잘 검토하여 조명 해 보자:
1) 바라바는 의로운 법의 심판을 받고 있었다.
2) 바라바는 자신을 대시해서 십자가를 짊은 사람이 결백한 것을 알고 있었다.
3) 바라바는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을 위해 진정한 대리인 것을 알고 있었다.
4) 바라바는 다른 사람이 대속을 받는 중 본인이 자유를 얻은 메리트를 위해서 한 노력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5) 바라바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을 위해 완벽히 효과적인 것을 알고 있었다.
바라바와 예수님은 위치가 교대됬다! “살인자의 감금, 저주, 수치, 그리고 극심한 슬픔은 의로우신 예수님에게 이전됬다; 그 와중 자유, 무죄, 안전, 그리고 깨끗한 나사렛인의 웰빙은 살인자의 전부가 되었다.
“바라바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권위와 특권이 설치되었다; 그 와중 후자는 반대자들의 악명과 공포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각 자신들의 위치와 소유를 서로 상호간에 물려 받았다: 범죄자의 죄책감과 십자가가 의로운 자의 전부가 되었고, 후자의 모든 인권과 면제가 범죄자의 소유가 되었다.” (John W. Lawrence, The Six Trials of Jesus, Kregel Publishing Co., Grand Rapids, MI 1996, p.181; http://idolphin.org/barabbas.html).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Chuck Missler의 요약에서 한 요점만 잘못되어 있습니다 – 바라바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성경에서나 전통에는 증거가 없습니다! 사실 상 그가 회심하지 않았다고 성경에 증거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오십일 후에, 예루살렘에서 베드로가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사도행전 3:14).
만약에 바라바가 회심을 했었으면 베드로가 그를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았을 겁니다. 초대교회 때에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 된 후에 그의 죄를 다시 부르는 것이 관례가 아니었습니다. 만약에 바라바가 회심하게 되었다면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아주 중대한 사람이 되었을 겁니다. 베드로는 그를 더이상 살인자라고 부르지 않았을 겁니다 바울 처럼 – 회심하긴 전 살인자였던 바울.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대신해 죽으셔서 바라바는 육체적으로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회심은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Mr. Missler의 요약이 다른 사람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할까 두렸습니다. 그의 마직막 네 요점에서, 그가 말하기를 “바라바가 알고 있었습니다” – 복음서가 구원을 가져다 줄수 있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처럼!
그러나 성경은 복음의 실제를 믿거나 알고 있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실상을 동의한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수 있다는 사상은 잘못된 “Sandemanianism” 이라고 불리웁니다, 창립자 Robert Sandeman 의 이름을 딴 것이지요. Dr. Martyn Lloyd-Jones가 말하기를 Sandemanianism은 “우리의 현대 시대에 큰 문제 중 하나 입니다” (D. Martyn Lloyd-Jones, M.D., “Sandemanianism,” The Puritans: Their Origins and Successors,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6 reprint, p. 177). Sandemaniasnism이 주장하는 것은 여러분이 성경구절을 믿을 때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 바로 이 사상은, 만약에 여러분이 정신적으로 구원의 대한 성경 구절을 받아 들인다면, 여러분은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18세기의 Sandemanians (이 사상을 지지하는 자들)는 확고한 칼빈주의자 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Whitefield의 설교를 싫어 했었습니다. Whitefield 도 또한 칼빈주의자 였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이 반드시 자신들의 죄를 느껴야 한다고 그는 주장 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래서, 웨스트민스터 교리 문답서(Westminster Catechism) 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 칼빈주의 교리에 대한 제일 유명한 책 입니다. 그래서 Whitefield는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죄의 확신을 반드시 가져야 하는 것 대해서 설교를 했을 때 교리 문답서에 충실 했습니다. 사람들이 회심하시 전에, 반드시 자신들의 죄를 느껴야 한다고 – 그리고 사람들이 반드시 애절해야 하며, 또한 대부분, 그리스도가 대속하신 복을 받기 전에 자신들의 죄를 위해서 슬퍼 울어야 한다고 합니다! (See Question LXXXVII, The Shorter Catechism Explained From Scripture, by Thomas Vincent, The Banner of Truth Trust, 1998 reprint, pp. 227-229).
네, 바라바는 그리스도가 자신을 대신해 죽은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그가 죄의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는 회심을 못한 것입니다. 저는 대속의 교리를 알고 있는 수 백명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봤습니다 – 그러나 이들은 회심을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바라바란 남자도 그리스도가 대신 죽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교리를 알았다고 해서 구원을 얻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죄의 대한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마음의 부폐를 위해 슬픔과 고통을 진정으로 느끼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생명같은 죄를 위해! 여러분은 반드시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피난처를 발견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죄로부터 씻으심을 받으시고, 말씀 구절을 믿어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그분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설교 끝)
여러분은 Dr. Hymers의 설교를 매주 인터넷 www.realconversion.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 “Sermon Manuscripts” 에 클릭 하시기 바랍니다.
Dr. Kreighton L. Chan이 설교 전 봉독했던 성경말씀: 마태복음 27:15-26.
Mr. Benjamin Kincaid Griffith이 설교 전 부르셨던 찬양:
“Charged with the Complicated Load”
(by Charles Wesley, 1762; and Augustus Toplady, 1776).
설교요약 바라바 (BARABBAS) by Dr. R. L. Hymers, Jr. “이에 바라바는 저희에게 놓아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져주니라” (마태복음 27:26). (마태복음 27:15; 마가복음 15:8; 요한복음 18:39; 사도행전 17:21; I. 첫번째, 바라바 대신 예수를 선택한 그들의 행위가 보여주었던 II. 두번째, 바라바 대신 예수의 대리 행위가 보여준 것은 죄인들을 |